자 료 실 》편지글
 

1. 근(勤)과 검(儉) 두 글자를 유산으로

 내가 벼슬하여 너희들에게 물려 줄 밭뙈기 정도도 장만하지 못했으니 오직 정신적인 부적 두 글자를 마음에 지녀 잘 살고 가난을 벗어날 수 있도록 이제 너희들에게 물려주겠다. 너희들은 너무 야박하다고 하지 말라. 한 글자는 근(근)이고 또 한 글자는 검(검)이다. 이 두 글자는 좋은 밭이나 기름진 땅보다도 나은 것이니 일생 동안 써도 다 닳지 않을 것이다. 땅보다도 나은 것이니 일생 동안 써도 다 닳지 않을 것이다.

 부지런함이란 무얼 뜻하겠는가?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지 말며 아침 때 할 일을 저녁 때로 미루지 말며, 맑은 날에 해야 할 일을 비오는 날까지 끌지 말도록 하고 비오는 날 해야 할 일도 맑은 날까지 끌지 말아야 한다. 늙은이는 앉아서 감독하고 어린 사람들은 직접 행동으로 어른의 감독을 실천에 옮기고 젊은이는 힘드는 일을 하고 어른의 감독을 실천에 옮기고 젊은이는 힘드는 일을 하고 병이 든 사름은 집을 지키고 부인들은 김쌈을 하기 위해 한밤중이 넘도록 잠을 자지 않아야 한다. 요컨대 집안의 상하 남녀간에 단 한 사람이라도 놀고먹는 사함이 없게 하고 또 잠짠이라도 노는 시간이 있어서는 안된다. 이런 걸 부지런함이라 한다.

 검소함이란 무엇일까? 의복이란 몸을 가리기만 하면 되는 것인데, 고운 비단으로 된 옷이야 조금이라도 헤지기만 하면 세상에서 볼품없는 것으로 되어 버리지만 텁텁하고 값싼 옷감으로 된 옷은 약간 해진다 해도 볼품이 없어지진 않는다. 한 벌의 옷을 만들 때마다 앞으로 계속 오래 입을 수 있을지 없을지를 생각해서 만들어야지 곱고 아름답게만 만들어 빨리 헤지게 해서는 안된다. 생각이 이 정도에 미치면 옷을 만들 게 되면 당연히 곱고 아름다운 옷을 만들지 않고 투박하고 질긴 것을 고르지 않을 사람이 없게 된다.

 음식이란 목숨만 이어가면 되는 것이다. 아무리 맛있는 고기나 생선이라도 입안으로만 들어가면 이미 더러운 물건이 되어 버린다. 삼키기 전에 이미 사람들이 싫어한다. 인간이 이 세상에서 귀하다고 하는 것은 정성 때문이니 전혀 속임이 있어서는 안 된다. 하늘을 속이면 제일 나쁜 일이고, 임금이나 어버이를 속이거나 농부가 같은 농부를 속이고 상인이 동업자를 속이면 모두 죄를 짓게 되는 것이다. 단 한가지 속일 수 있는 일이 있다면 그건 자기의 입과 입술이다. 아무리 맛없는 음식도 맛있게 생각하여 입과 입술을 속여서 잠깐 동안만 지내고 보면 배고픔은 가셔서 주림을 면할 수 있을 것이니 이러해야만 가난을 이기는 방법이 된다.

 금년 여름에 내가 단산에서 지내며 상추로 밥을 싸서 덩이를 삼키고 있을 때 옆 사람이 구경하고는 "상추로 싸먹는 것과 김치 담아 먹는 것은 차이가 있는 겁니까?라고 묻기에 내가 말하길 "그건 사람이 자기 입을 속여 먹는 법입니다."라고 말하여 적은 음식을 배부르게 먹는 방법에 대하여 이야기 해 준 적이 있다. 어떤 음식을 먹을 때마다 이러한 생각을 지니고 있어야 하며, 맛있고 기름진 음식만을 먹으려고 애써서는 결국 변서에 가서 대변보는 일에 정력을 소비할 뿐이다. 이러한 생각은 당장의 어려운 생활 처지를 극복하는 방편만이 아니라 귀하고 부유한 사람 및 복이 많은 사람이나 선비들의 집안을 다스리고 몸을 유지해 가는 방법도 된다. 근과 검, 이 두 글자 아니고는 손을 댈 곳이 없는 것이니 너희들은 절대로 명심하도록 하라.

1810년 9월 다산 동암에서 쓰다.

 

 2. 독서의 근본은 효(孝)와 제(悌)

 이 세상에 있는 온갖 물건 중에는 자연스럽게 존재하여 그대로 좋은 것이 있다. 이렇듯 온전한 것을 가지고 자랑하거나 말할 필요가 없다. 다만 깨진 것이나 찢어진 것을 만지거나 다듬어서 완전하게 만들어야만 그 공덕을 찬사 받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죽을 병에 걸린 사람을 살려야만 훌륭한 의원이라 부르고 공격 중에 곧 질 것 같은 군대를 일으켜 세워야 훌륭한 장수라 일컫는다.

 요즘 세상을 휩쓸고 다니는 고관들의 자제들처럼 좋은 의관을 걸치고 다니면서 집안 이름을 떨치는 것은 아무리 못난 사람도 다 할 수 있다. 그러나 너희들은 망한 집안의 자식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잘 처신하여 본래의 가문보다 훌륭하게 된다면, 이것이야말로 대견하고 자랑스럽지 않겠느냐.

 집안이 망했기 때문에 더욱 정진해야 할 것은 책을 읽어 학문을 하는 일이다. 독서는 바로 인간에게 으뜸으로 치는 값진 일이다. 너희들은 좋은 집안의 자제로서 글읽기에 알맞는 환경을 타고났다. 비록 중년에 재난을 만나 곤궁해졌지만, 너희 선대가 읽던 책이 서재에 가득하니 얼마나 다행한 일이냐.

 의원이 3대를 거치지 않으면 그가 주는 약은 먹지 않는다고 했다. 이렇듯 몇 대를 내려가면서 글을 하는 집안이라야 문장을 할 수 있는 것이다. 돌이켜보건대 내 재주가 너희들보다 조금 더 있을지 모르지만, 어려서는 학문의 방향을 알지 못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나는 나이 열 다섯에야 겨우 서울 유학을 해보았으나, 이것 저것 넘겨다보기만 했지 얻은 것은 별로 없었다. 그후 스무살 무렵에 과거 공부에 전력을 기울였더니 소과에 합격하여 태학에 들어가게 되었다. 여기서 또 대과 응시과목인 사자구, 육자구 등의 화려한 문장 공부에 골몰하여, 대학의 과제를 하느라 글자의 정의나 알아내는 일에 십년 가까이 온 마음을 쏟았다.

 대과에 합격해서는 책을 펴내는 내각의 직책으로 분주한 나날을 보냈다. 그러다가 곡산의 도호부사직을 맡게 되어 백성을 다스리는 일에 온 정성을 쏟았었는데, 다시 돌아와 탄핵을 받게 되었다. 그 일년 후에 정조 임금이 돌아가신 슬픔으로 흘린 눈물이 채 마르기도 전에 유배형을 받았으므로 거의 하루도 마음 편히 책을 읽을 겨를이 없었다.

 사정이 이러했기 때문에 내가 지은 시나 문장은 아무리 맑은 물로 씻어낸다 해도 과거 시험 답안 같은 굴레를 벗어날 수 없었고, 조금 괜찮은 것은 공문서체를 면할 수 없는 것이었다.

 큰애야, 너의 재주와 암기력은 조금 떨어진 듯 하나 열 살 때 지은 네 글을 나는 스무 살 적에도 짓지 못했을 것 같고, 이 근래에 지은 글은 지금의 나로서도 따를 수 없는 것이 더러 있으니, 그것은 네가 일찍이 공부하는 길을 택했고 견문이 넓었기 때문이다.

 네가 곡산에서 공부하다 집으로 돌아갈 때 과거 시험을 준비하라고 일러 보낸 적이 있었지. 그 당시 주위에서 너를 아끼던 선비들은 본격적인 학문을 시키라면서 과거 따위에 욕심을 부리는 나를 탓했고 나 또한 곧 후회했다. 그러나 이제 과거에 응할 수 없는 신분이 되었으니, 과거 공부로 인해 학문의 영역이 좁아질까 염려하지 않아도 되겠구나.

 아버지 생각으로는 너는 이미 과거에 합격할 실력을 갖추었다고 생각하니, 진사쯤의 벼슬에 오르는 것과 학문을 연구하는 것 중 어느 것이 나은가는 스스로 판단할 일인 것인 즉, 이제 너야말로 참으로 독서할 때를 만났다. 이런 경우를 전화위복이라 하는 것으로서 가문이 망해버린 때문에 오히려 더 좋은 일을 할  수 있다는 것 아니겠느냐.

 둘째는 재주로 보면 너에 비해 주판 한 알 쯤 부족한 듯 하나 자상한 성품과 깊이 생각하는 사고력이 있으니, 열심히 독서에 온 마음을 기울이다 보면 형과 어깨를 맞댈 수 있을 것이다. 근자에 둘째의 글을 보니 점점 향상되어 앞으로 잘 할 것 같더라.

 독서할 때는 반드시 근본을 세워야 하는 법인데, 근본이란 무엇을 뜻하겟느냐? 그것은 오직 효(孝)와 제(悌) 그것 뿐이다. 먼저 효와 제를 힘써 행하여 근본이 세워지면 학문은 저절로 우리 몸 속에 퍼져 들어오고, 학문이 몸 속에 퍼져 들어온다면 독서에 대해서 별다륹 조건을 달 필요가 없다.

 얘들아, 천지간에 외롭게 서 있는 내가 의지할 것이라곤 오로지 책과 붓이 있을 뿐이다. 문득 한 구절이나 한 편 정도 마음에 드는 것을 얻었을 때, 혼자서 읇조리다가 이 세상에서 다만 너희들에게 보여 줄 수 있겠다 싶은데, 너희들 생각은 벌써 달나라처럼 멀리 떨어져 나가 내 뜻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고 쓸모 없는 것이라고 밀쳐 버리지나 않을까 모르겠다.

 어느 새 나이 들어 수염까지 긴 너희들이 아버지를 대면한다면 밉게만 보일텐데 내 책을 읽으려고 할까? 천하에 불효자였던 조괄이라는 사람은 그가 아버지의 글을 잘 읽었기에 나중에는 어진 아들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너희들이 정말로 책을 읽어주지 않는다면 내 저서는 쓸모없는 것이 되고 말 것이다. 내가 쓰는 글들이 쓸모없다면 나는 할 일 없는 사람이 되고 말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앞으로 마음의 눈을 감고 흙으로 빚은 사람처럼 앉아 있어야 할 것인 즉, 열흘이 못되어 병이 날 것이고 이 병을 고칠 약도 없을 것이다. 그리기 때문에 너희들이 독서하는 것은 내 목숨을 연장시키는 것과 다름이 없다. 너희들은 아버지의 말을 곰곰이 다시 한 번 생각해 주기 바란다.

 

 3. 효도는 어버이의 뜻을 거스리지 않는 것

 어버이를 섬기는 일은 그 뜻을 거역하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다. 여인들은 의복이나 음식, 거처하는 것에 관심이 않으므로 어버이를 섬기는 사람은 사소한 일에 유의해야만 효성스럽게 섬길 수 있을 것이다. <예기>의 내칙 편에는 음식에 관한 것 등 조그만 예절이 많이 적혀 있는데, 이것은 성인의 가르침이란 물정을 알 게 하는데서 출발하는 것이지 결코 동떨어지고 미묘한 곳에서 시작되지 않고 있음을 알 게 한다.

 요즘 세상에 사대부 집안에서 부녀자들이 오래 전부터 부엌에 들어가지 않는 것이 예사다. 네가 한 번 생각해 보아라. 부엌에 들어간들 무엇이 그리 손해가 되겠는가? 다만 잠깐 연기를 쏘일 뿐이다. 그런데 연기 좀 쏘이고, 시어머니의 환심을 얻으면 효부가 되고 법도 있는 집안도 만드니 효도하고 지혜로운 일이 아니겠느냐?

 또 너희 형제는 새벽이나 늦은 밤에 방이 차가운가 따뜻한가 항상 점검하고 이부자리 밑에 손을 넣어 보고 차면 항상 따뜻하게 몸소 불을 때 드리되, 이런 일은 종들을 시키지 않도록 하여라. 그 수고스러뭉도 잠깐 연기 쏘이는 일에 지나지 않는 것이지만 네 어머니는 무엇보다 더 기분이 좋은 것인데, 너희들도 이런 일을 왜 즐거워하지 않느냐? 어머니와 아들,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에서 아들과 며느리가 불효를 해서 어머니나 시어머니가 한탄하고 있을 때 남녀종들은 그 틈을 노려 주인마님의 상에 장 한 숟갈이나 맛있는 과일 하나라도 더 올려 환심을 사고 골육간의 사이를 더욱 이간시키려고 할 것인데 이것은 아들이나 며느리가 잘못하기 때문이지 남녀 종들이 나빠서 그런 것은 절대로 아니다. 마땅히 이런 것을 거울 삼아 온갖 방법을 다 짜내서 어머니를 기쁘게 해 드리도록 하라.

 두 아들이 효자가 되고, 두 며느리가 효부가 된다면 나야 유배지에서 이대로 늙어 죽는다고 해도 아무 유감이 없겠다. 힘쓸지어다.

 

4. 밥 파는 노파에게 배운 진리

 어느 하루 저녁에 집주인 노파가 곁에서 한담을 나누면서 갑자기 묻기를 "선생은 책을 읽은 사람인데 이런 뜻을 아시는지요? 아버지와 어머니의 은혜는 똑같고 더구나 어머니가 오히려 더 애쓰시는데도, 성인들이 교훈을 세우기를 아버지를 중히 여기고 어머니는 가벼이 하도록 했고,  성씨도 아버지를 따르게 하였으며 복(服)을 입을 경우에도 아버지의 혈통으로 집안을 이루게 해놓고는 어머니 집안은 도외시해 버리도록 하였으니 이것은 너무도 편파적이 아닌가요?"라고 했습니다.

 내가 답하길 "아버지께서 나를 낳으셨다고 했기 때문에 옛날 책에는 아버지가 자기를 처음 태어나게 하신 분으로 하였소. 그 어머니의 은혜도 무척 깊기는 하지만 하늘의 으뜸인 탄생되게 하는 근본의 은혜가 더 중요한 탓일 겁니다."라고 했더니 노파가 말하길 "선생의 말은 옳지 않습니다. 내가 생각해보니 그렇지 않습니다. 풀이나 나무를 예로 들어서 말하겠소. 아버지는 나무나 풀의 종자입니다. 어머니는 나무나 풀로 보면 토양입니다. 종자가 땅에 떨어지는 것은 그 베푸는 것이 지극히 미미한 것이지만, 부드러운 흙의 자양분으로 길러내는 흙의 은공은 대단히 큽니다. 그러나 밤의 종자가 밤나무로 되고 벼의 종자가 벼가 되는데, 그 몸 전체를 이루는 것은 모두가 땅기운이지만, 결국은 나무나 풀의 종류는 본래의 씨를 따라서 나뉘게 되는 것이니 옛날 성인들이 교훈을 세워 예를 제정한 것이 그러한 이유인 것으로 생각됩니다."라 하였습니다.

 나는 이러한 말을 듣고 흠칫 크게 깨달아 공경하는 마음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천지간에 지극히 정밀하고 지극히 오묘한 진리를 이러한 밥 파는 노파로부터 나올 줄이야 누가 알기나 했겠습니까? 기특하고 기특한 일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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