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 상 》사상의 개관 / 핵심사상
 

 다산은 실학을 집대성하여 정치, 경제, 역사, 지리, 문학, 음악, 철학, 의학, 교육학, 군사학, 자연과학 등 거의 모든 분야에 걸쳐 500여권이 넘는 방대한 양의 저술을 남겼다. 몇 가지 중요한 분야로 나누어 간략하게 알아보도록 한다.

1. 철학 (哲學)

 다산의 사상은 당시 조선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사회 전반을 지배하던 성리학(性理學)에 대한 비판에서 출발한다. 먼저 다산은 이(理)의 실제성을 부정한다. 무형의 추상물인 이가 현상의 존재근거일 수 없다는 것이다. 인성론(人性論)에 있어서도 그는 성리학의 주요 명제인 성즉리(性卽理)를 부정한다. 다산은 성(性)이 기호(嗜好)라고 생각하였고, 비생산적인 4단7정(四端七情)의 논쟁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다산의 윤리관(倫理觀)도 철저히 실천적인 성격을 띤다.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에서만 인·의·예·지(仁·義·禮·智)가 성립된다는 것이 그의 확고한 신념이었다.

2. 정치와 경제 (政治 經濟)

 다산의 정치·경제사상의 핵심은 개혁사상(改革思想)이다. 그는 당시 사회를 "털끝 하나도 병들지 않은 것이 없는" 사회로 진단하고 이 병을 치료하기 위한 전면적인 개혁을 주장했다. 그의 개혁안을 담은 대표적인 저술이 경세유표(經世遺表)와 목민심서(牧民心書)인데, 경세유표는 당시의 법질서를 초월한 국가기구 전반에 걸친 개혁의 청사진이고, 목민심서는 법질서 안에서의 지방행정에 대한 개혁안이다. 다산의 개혁안은 제도개혁에 집중되어있다. 제도개혁 중에서 가장 주목할만한 것은 여전제(閭田制)로의 토지제도 개혁안이다. 마을 단위로 토지를 공동으로 소유하고 공동으로 경작하여 그 생산물을 노동일수에 의하여 공동으로 분배하자는 것이 이 개혁안의 골자이다.

 토지제도의 개혁과 함께 그는 당시 부정·부패의 온상이 되었던 환곡(還穀 : 조선 시대, 삼정(三政)의 하나. 국가가 비축했던 곡식을 춘궁기에 백성에게 꾸어 주었다 추수 후 돌려받는 곡식 및 그 제도)과 군포(軍布 : 조선 시대에 병역을 면제하여 주고 그 대신 받아들이던 삼베나 무명. 군보포)의 개혁도 강력히 주장했다. 또한 봉건 지배층의 기반을 강화, 유지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신분제도와 과거제도 등도 중요한 개혁대상이었다.

 다산은  "천자(天子)는 대중이 추대하여 된 것이기 때문에 대중의 의사에 따라서 천자를 교체할 수도 있다"는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 또한 "통치자가 백성을 위하여 존재하는가, 백성이 통치자를 위하여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을 제기하고, 백성들의 필요에 의해 통치자를 선출했기 때문에 통치자는 백성을 위하여 존재한다는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

3. 문학 (文學)

 다산은 2,500여 수의 시를 남긴 뛰어난 시인이기도 하다. 다산시의 특징은 사회에 대한 강렬한 비판의식을 담고 있다. 그의 시에는 조선 후기사회의 사회적 모순들이 낱낱이 고발되어 있다. 잘못된 사회제도가 백성을 어떻게 멍들게 하며, 관리들의 횡포로 백성들이 얼마나 고통 당하는 가를 잘 표현하고 있다. 또 다른 다산시 특징은 강한 민족정신을 담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정신은 "나는 본래 조선사람 / 조선시 즐겨 쓰리"라는 말에 잘 나타나있다.

4. 과학 (科學)

 다산은 자연과학에 대해서도 깊은 관심을 가지고 많은 업적을 남겼다. 과학적 자세는 사고의 합리성이 전제되어야 하는데 다산은 일체의 비합리적인 것을 배척했다.그는 손목의 맥(脈)을 짚어 병을 진단하는 맥진법(脈診法)의 부정확성을 비판했고, 얼굴 모양을 보고 운명을 점치는 관상법(觀相法)을 배격했으며 풍수지리설(風水地理說) 또한 맹렬히 비판했다. 그는 풍수설을 가리켜 "아, 이야말로 꿈속에서 꿈꾸고, 속이는 속에서 또 속이는 연극이다"라고 까지 말했다. 그는 밀물과 썰물이 일어나는 원인과 근시(近視)와 원시(遠視) 현상에 대해서도 비교적 정확한 이론을 전개했다. 뿐만 아니라 박제가와 함께 우리 나라 최초로 종두법(種痘法)을 연구하여 보급한 전말을 기록하여, 불후의 의서(醫書)인 마과회통(麻科會通) 등을 남겼다.

5. 기타 (其他)

 예악사상(禮樂思想)도 다산의 사상을 이해하는 데에 매우 중요하다. 특히 예(禮)에 관한 글들은 다산이 많은 공력을 기울여 저술한 것이다. 그리고 흠흠신서(欽欽新書)가 담고 있는 다산의 법사상(法思想) 또한 중요하다. 이 책은 일종의 형법서(刑法書)로 살인사건을 조사하고 심리하고 재판하고 처형하는 과정에서의 공정성과 정확성을 기하기 위하여 집필한 것이다. 다산은 이 책에서 150여건의 살인사건을 예시하고 있는데, 법의학, 사실인정, 법해석 등의 문제를 포괄하고 있어서 재판에 관한 종합적 연구서이자 훌륭한 판례집이라 할 수 있다. 아울러 다산의 생명존중사상도 드러나 있다.

 다산은 전 생애에 걸쳐 오직 민족과 국가를 위하여 사색하고 저술하고 활동했다. 유배되기 전이나 유배기간 중이나 유배에서 풀려나 고향에 은거할 때나 한결같이 자신의 영달보다 국가와 민족의 문제를 우선적으로 생각했다. 이 점이 그의 위대성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