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료 실 조선왕조실록자료
 

1. 퇴계 관련 기사
 조선왕조실록(태조로부터 철종에 이르기까지 25대 472년간, 총 1893권 888책의 방대한 조선시대의 정사)에서 퇴계 관련 기사는 약 350여조이다. 전 실록을 통하여 개인으로는 가장 많은 빈도를 차지하는 사람 중의 한 분이었다. 기간으로는 중종(권77) 29년 (1534년) 4월로부터 순조(권19) 16년 (1816년) 8월에 이르기까지 282년 동안 등장한다. 이 기간 중 벼슬에 나간 때(1534년)부터 사망할 때(1570년)까지 (퇴계는 중종, 인종, 명종, 선조 4대에 걸쳐 벼슬을 하였음)의 입조사실이 전체의 2/3분량이 된다. 그에 대한 실록의 역사적 평가는 예외 없이 호의적이고 긍정적이었고 정인홍의 상소 한 곳이 유일한 부정적인 글이었다.

2. 선조수정실록의 역책(군자의 죽음)기사
"선조 3년 12월 숭정대부 판중추부사 이황이 졸하였다."
 영의정을 증직하고 예장을 하라하고 부의금을 내렸다. 황은 귀향하여 여러번 인년 치사 할 것을 상장하였으나 불허하였는데, 병이 들어 큰아들 준에게 유계를 하기를 "내가 죽으면 해조에서는 반드시 예에 따라 예장을 하려고 할 것이나 너는 모름지기 유언이라 말하고 고사할 것을 진소하여라. 그리고 묘비에는 비갈을 세우지 말고 다만 조그만 돌에다가 퇴도만은진성이공지묘(退陶晩隱眞城李公之墓)라고 쓸 것이며, 지어놓은 명문을 그 뒤에다가 새기라."하였다.

3. 퇴계에 대한 사관의 평가 요약

연  대

기사

사관의 글

중종(권97)
37년 11월

이황을 사가독서에서 한가한 관직으로 옮기라는 전교

사가독서하게된 사람들을 상께서 이처럼 중히 여기는데도 숙배한 다음에는 더러 임의로 들락날락하니 성상이 위임하고 중히 여기는 뜻을 받드는 것인가?
(이황은 열심히 동호에서 독서하였다.)

명종(권2)
즉위년10월

 이기가 삭탈관직을  계함

 심하도다 소인의 사사로운 원한을 갚는 행위여

명종(권2)
즉위년

 이기가 전일의 상소 를 취소하고 이황의 직첩을 돌려 주라는 계

 이기가 처음 죄주자고 청한 것은 사사로운 원한을 몰래 갚자는 것이었다.(....)이때 이기는 공론이 찬성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대죄하였다.그가 흉험하고 사악하여 거침없이 임금의 귀를 속임으로 이 뒤로는 사람들이 다 무서워서 곁눈질 하고 조심하여 장차 어떻게 될지 예측하지 못했다.

명종(권13)
7년 6월

 이황을 홍문관 부응교로

 이황은 학문과 행실이 참으로 영특한 선비인데 역접 윤원형의 조아인 정준과 같은 날 직을 배수하였다.( )과( )를 어찌 한그릇에 담을 수 있겠는가?

명종(권14)
8년 5월

 대사성 이황 임명

 이황은 사람됨은 기질이 뛰어나게 총명하고 슬기로우며 가을달 얼음항아리같이 깨긋하고 위엄이 있으며 평온한 마음으로 자신을 지키고 숨어서 수양하고 물러나 도를 간직하는데 있으며 벼슬에는 전혀 뜻이 없었다. 그의 학문은 궁리와 정심이고 주자, 정자, 공자, 맹자로 법삼았으며 책속에 파묻혀 성현의 사업을 자신의 임무로 여겼다. 조용하고 화순하여 일상생활의 모든 것이 저절로 법도에 맞았다. 이기에게 논박을 받고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갔는데 누차 관직을 주고 명하므로 억지로 벼슬에 나왔다.

명종(권15)
8년 10월

 상호군 이황이 서얼허통을 주청

 (...)지금까지 허통을 경솔하고 고치지 못한 것은 반드시 깊은 뜻이 있어서였다. 아첨하는 무리들이 여기에 부화뇌동하여 조종의 대방을 그르치니 애석하지 않은가.(...)

명종(권18)
10년 5월

 이황이 초소하지 않았다.

 (...)만일 상이 지성스럽고 간절한 마음으로 글로써 뜻을 감동시킬 수 있다면 조정으로 돌아올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번에도 으례껏 하는 일처럼 단지 형식적으로 부른다면 이황은 오지 않을 것이다.

명종(권18)
10년 5월

 이황이 초소하지 않았다.

 그를 논사하는 위치에 두지 않고 시골로 퇴거하도록 하였으니 어찌 크게 잘못된 정사가 아니겠는가?

명종(권18)
10년 5월

 이황이 초소하지 않았다.

 오늘날 훌륭하다고 할 자는 곧 이황이다. 마땅히 여러번 불러 논사하는 자리에 임명해야한다. 대신과 시종이 누차 아룄으나 상이 유념하지 않으니 애석하기 그지 없다.

명종(권20)
11년 6월

 이황을 부제학에서 첨지중추부사로

 이황의 사람됨이 문장과 조행을 겸비하고 또한 ()()하여 범속에서 벗어난 절개를 가졌으니 참으로 세상에 드문 인재다. 진실로 정성으로 부른다면 어찌 오지 않겠는가?(...)

명종(권24)
13년 8월

 무오사직소

 군자가 도를 배우고 벼슬에 나아가서 조정에 서고 싶지 않으면 돌아가는 것이다. (...) 구차하게 녹만 먹을 수 없기 때문에 명소하여도 극력 사양하였다. 이황은 청렴하게 굳굳한 지조를 닦아 세리를 영화로 여기지 않았다.

명종(권25)
14년 4월

 공조참판 사직소

 임금이 어진이를 존경하고 도를 즐기는 정성이 있으면 산속에 숨은 선비도 조정에서 벼슬하기를 원할 것이다. 어찌 물러가기를 구하여 황과 같이 하는 자가 있겠는가. 그렇다면 황이 물러가는 것이 아니라 상의 정성이 부족한 것이다

명종(권31)
20년 12월

 상이 하서하여 상경을 독촉

 (...) 현인이라 불러 놓고 어질지 않는 사람으로 대우하니, 이것이 황이 종신토록 조정에 나오지 않는 이유이다.

명종(권32)
21년 3월

 홍문관, 예문관 대제학을 배수

 이황은 학문이 정심하고 실천이 독실하며 문장과 절행이 일세의 표준이다.(...) 홍()은 일시의 물망이 황에게 집중된 것을 알고 문형의 자리를 간곡히 사양하였다.

명종(권32)
21년 4월

 대제학을 갈다.

 (...) 임명하기를 너무 급하게 하고 체임하기를 또 빠르게 하여 대제학을 한달도 못되어 이황이 미처 알기도 전에 또 바꾸어 임명했으니 이것은 실로 무슨 사체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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