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료 실 자성록에 관하여
 

1. 자성록 서문에 해당하는 퇴계의 글
 옛 사람들이 말을 함부로 하지 않은 것은 실천이 따르지 못함을 부끄러워해서였다. 지금 친구들과 학문을 강구하느라 서신을 서로 나누면서 한 말은 부득이한 것이지만, 이미 그 부끄러움을 스스로 이기지 못하겠다. 하물며 이미 말한 뒤에, 저편 사람은 잊지 않았느데 내가 잊은 것이 있는가 하면, 저편과 내가 다 잊어 버린 것이 있으니, 이것은 부끄러울 뿐 아니라 거의 기탄없게 되는 것으로서 두렵기 그지 없다.

 그 동안 옛 상자를 뒤져, 보존되어 있는 편지 원고를 베껴서 책상에 두고, 때때로 펼쳐 보면서 여기서 자주 반성하기 그치지 않았었다. 원고가 없어져 기록하지 못한 것도 그 중에는 있을 것이다. 하기야 잃어 버리지 않고 모든 편지를 다 기록하여 큰 책을 만들었던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가정 무오 단오 후(1558년 명종 13년) / 일일 퇴계 노인 적음

2. 자성록 해제
 이 책은 이름 그대로 자기성찰과 자기반성을 위하여 엮은 것이다. '자성록'이란 책이름에 맞추어 새로 지은 것이 아니라 평소 남들과 나눈 편지를 모은 일종의 '서간문 편집서'에 해당한다. 그 선정되어 엮은 편지의 내용이 퇴계가 볼 때 자성의 자료가 될 만한 것이라 판단했던 점에서 퇴계의 다른 편지들 보다 주목을 끄는 것이다.

 퇴계는 일생동안 백여명의 사람과 천여 통이 넘는 편지를 나누었다. 그 편지를 나눈 사람의 대부분은 문인, 제자, 친구, 가족 등인데, 이들과 나눈 편지도 따지고 보면 50세 이후 특히 노년기 내지 은퇴기에 학자·교육자로서의 퇴계가 나눈 편지가 대부분이라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학자·교육자로서의 퇴계가 자기 반성의 자료로 삼았다면 어떤 종류이 내용이었을까? 그의 학문은 위기지학(爲己之學)을 표방한 신유학으로서의 '성리학'이다. 천리와 심성에 관한 형이상학적 이론의 탐구와 함께 의리지행을 위해 존심 양성(存心 養性)의 수양을 필수적 조선(생명)으로 여기는 성리학이다. 그러므로 여기에 수록된 편지들은 천리와 인성에 관한 형이상학적 문제와 아울러 의리지행으로서의 진퇴을 논의하는 문제 및 존심·양성의 실천·궁행의 문제가 주요한 내용이다.

 지행병진, 언행일치를 생활 신조로 삼았던 퇴계이므로 존심· 양성의 수양을 위한 고민이 특히 우리의 심금을 울린다. 바꿔 말해 인격 형성에 의한 참된 인간의 성취 또는 인간 완성의 고민이 무엇보다 감명 깊다. 이러한 고민으로 해서 인생에 임하는 그의 성실성과 경건함이 여러 문맥과 행간 속에서 인상 깊게 발견된다.

  "옛 사람들이 말을 함부로 하지 않은 것은 실천이 따르지 못함을 부끄러워하였기 때문이다."라는 머리글이 이러한 점을 한마디로 잘 나타내 준다. 국내외 특히 과거 일본 학자들이 '자성록'을 극구 찬탄해 마지 않던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윤사순 역주 / 퇴계 선집 / 현암사 간 / 56-5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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