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 적 지 》묘소
 

앞에서 본 퇴계선생 묘지

 퇴계는 1570년(선조 3년) 12월 3일 자제들에게 다른 사람들로부터 빌려온 서적들을 돌려보내게 하였으며, 12월 4일 조카에게 명하여 유서를 쓰게게 하였다.

 이 유서에는
1)조정에서 내려주는 예장을 사양할 것(예를 갖춘 성대한 장례를 피하라는 뜻)

2)비석을 세우지 말고 조그마한 돌의 앞면에는 '퇴도만은진성이공지묘' (退陶晩隱眞城李公之墓 : 도산에서 물러나 만년을 숨어산 진성 이씨의 묘라는 뜻)라고만 새기고, 뒷면에는 고향과 조상의 내력, 뜻한 바와 행적을 간단하게 쓰도록 당부하였다.

뒤에서 본 퇴계선생 묘지

 12월 5일 시신을 염습할 준비를 하도록 명하고, 12월 7일 제자 이덕홍에게 서적을 맡게 하였으며, 그 이튿날 12월 8일 한서암에서 앉아서 고요히 세상을 떠났다.

 퇴계의 묘소는 종택에서 남쪽으로 약 1㎞ 가량 떨어진 토계동 건지산 남쪽 산봉우리 위에 있다.

 문인록에 언급된 바와 같이 선생의 유언에도 불구하고 장례식은 정부의 방침에 의하여 오늘날의 국장인 예장으로 치루어졌으나 성현의 묘소로서는 초라한 편이다. 

퇴계선생 묘비

 퇴계의 유언에 따라 묘비의 앞면에는 '퇴도만은 진성이공지묘'라고 써있고, 뒷면에는 선생의 자명과 문인 기고봉이 지은 묘갈문이 새겨져 있다.

 이 비석은 통상 비석을 배치하는 방법과 달리  특이하게 동쪽을 등에 지고 서쪽을 바라보고 서 있으며, 비석의 윗부분에는 좌우대칭의 구름무늬 한가운데 앞면에는 태양이 뒷면에는 반달이 그려져 있다.

이 비석은 원래의 것이 아니라 1906년에 다시 세운 것이라고 한다.

 묘소 앞으로는 동자석이 좌우로 자리잡고 있고, 멀리는 망주가 벌려 서 있으며, 더 앞쪽으로 나아가서 문인석이 좌우로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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